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침수된 울산지역 차량들




2016년 10월 4일 태풍 차바가 경남지역에 접근하면서 침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위 사진은 오늘 침수된 차량들인데, 올 늦가을부터 내년초 중고차 시장에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침수된 차량을 100% 완벽하게 복원하려면 조립직전 단계까지 완전 분해하여 부품 하나하나 깨끗하게 세척을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꼼꼼하게 정비하는 중고차 업자는 당연히 없다. 중요한 부품들과 일반인이 육안으로 살펴볼 수 있는 부위까지만 세척을 하고 시장에 풀기 때문에 상품화작업을 거친 침수차량은 무사고라 할지라도 절대 구입해서는 안된다. 침수차량을 구입할바엔 문짝 4개와 본넷, 펜다 단순교환한 차량이 훨 낫다.




침수차 구별방법





우선 가장 쉬운 방법은 특수사고 이력을 확인하는 것인데, 침수 사고시  보험처리를 했다면 이를 통해 쉽게 확인할수있으니 중고차를 구입예정인 분들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할 사안이다. 단, 보험사고 이력은 보험처리 시에만 기록이 확인되며 보험처리를 하더라도 2개월이 지난 후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






1. 안전벨트 확인



안전벨트는 세척하기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부위이다. 그래서 침수차 구별시 안전벨트를 가장먼저 살펴보는 부품이라고 하지만! 이미 옛 말이 된지 오래다. 요즘에는 싹 닦아내고 말리고 소독까지 하거나 아예 새것으로 교체해버려서 일반인이 구별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꼼꼼히 살펴본다면 교체된 안전벨트는 오히려 구별하기가 더 쉬운 편이다.


벨트를 당겨봐서 흙탕물 얼룩이 묻어있다면 99% 침수차다.


그런데 교체된 안전벨트라면?

안전벨트는 직물로 제작되기 때문에 오랜기간 사용하면 운전자의 옷과 마찰로 인해 살짝 닳게 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이 없이 몸에 닿는 부위와 몸에 닿지 않는 부위가 똑같다면 침수로 인해 교체된 것이다. 새 벨트기때문에 끝에 금속으로 된 결합부위 역시 분명 기스가 거의 없을 것... 다른 좌석 안전벨트 끝의 금속부위와 마모정도가 똑같다면 교체된 것으로 봐도 된다.


벨트를 당겨봐서 흙탕물 얼룩도 없고 몸에 닿는 부분과 닿지 않는 부분이 살짝 차이가 나고 처음 잡아 당기는 부분에 손때가 묻어 있다면 침수차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2. 시거잭 내부 확인



시거잭 내부는 침수가 아닌 이상 녹슬 수가 없다.

녹이 슬었다면 면봉으로 시거잭 안을 닦아봐서 흙먼지가 묻어나온다면 100% 침수차량이다.






3. 주유구 확인



주유구는 차량 외부에 있어 비가 오거나 세차시 물이 들어 갈 수는 있지만, 흙탕물이 들어갈 일은 없다.

따라서 주유구에 흙탕물이나 불순물이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4. 뒷좌석 수납함 및 조수석 수납함 내부 확인

침수 이력이 있는 중고차의 수납함과 일반 중고차의 수납함은 미세한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의 LED 라이트 등을 이용하여 수납함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침수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다.






5. 에어컨 송풍구 내부 확인

보통 침수차량은 중고차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팔려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업자들은 일반인이 인터넷 등에서 침수차 확인방법 등을 보고 올 것에 대비하여 그 부분을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뒷좌석의 에어컨 송풍구 내부까지 신경쓰지는 못한다. 기다랗고 잘 휘어지는 플라스틱 막대 끝에 하얀 솜이나 천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송풍구로 넣어 이리저리 휘저어 보자. 누런 흙탕물 자국이 묻어나오면 침수차량이다.






6. 엔진룸, 트렁크 확인

보닛을 열어 엔진룸을 확인해서, 물이 고여 있거나 흙탕물 자국이 있거나, 트렁크에 물이 고여 있고, 녹이 슨자국이 있을때, 그리고  차량 하부에 과한 흙자국이 있다면 침수여부를 의심해 볼수 있다.






7. 몰딩, 고무패드 부분 확인



조수석이나 운전석 옆 고무부분을 확인해보는것도 좋다. 모래나 이물질이 많이 쌓이는 공간이지만, 중고차 업자가 이부분까지 뜯어서 세척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좋은 구별방법이 된다.






8. 차량 연식에 비해 지나치게 깨끗한 시트와 매트



자동차 침수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발생한다. 따라서 차량이 침수되고 오랫동안 방치되면 시트에 곰팡이가 피고 악취가 나기 마련인데, 깨끗하게 세척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개는 시트를 통째로 교체하는데, 차량 연식에 비해 시트가 너무 깨끗하다면 침수로 인한 교체를 의심해볼 수 있다.

매트 또한 시트와 마찬가지로 의심해볼 수 있는 좋은 부분이다.






9. 특유의 자동차 냄새가 아닌 향기가 나는 차

침수로 인해 눅눅해지고 곰팡이가 피어 나는 냄새를 숨기기 위해 방향제를 달아 놓은 중고차나 방향제도 없는데 향기가 나는 차는 피해야 한다.

중고차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확인해야 한다.






10. 각종 버튼들의 눌려지는 느낌

침수 이력이 있는 차는 그렇지 않은 차와 비교했을 때 각종 기능 버튼들의 눌려지는 느낌이 다르다.

미세한 흙먼지등 이물질들이 버튼 틈사이에 끼었기 때문인데, 근처에 같은 차종이 있다면 버튼이 눌려지는 느낌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이정도만 꼼꼼하게 체크해도 침수차량은 피할 수 있다.







이 붉은 무리는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남군정서, 북군정서 등에 스며 들어가 능란한 모략으로 내부로부터 분해시키고 상극을 시켜 이 모든 기관을 혹은 붕괴하게 하고 혹은 서로 싸워서 여지없이 파괴하여 버리고 동포끼리 많은 피를 흘리게 하니 백광운, 김좌진, 김규식(나중에 박사라고 된 김규식이 아님) 등 우리 운동에 큰 일꾼들이 이 통에 아까운 희생이 되고 말았다. 


출처 : 백범일지





김좌진(1889-1930) 암살 : 청산리전투 지휘.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살해당함



백광운(?-1924) 암살 : 무장독립운동가로 사이토 총독 암살 미수사건을 주도, 만주독립군 친임시정부파 참의부 소속이었다.

만주독립군 친공산계열 통의부 소속 문학빈에게 살해당함.



김규식(1882-1931) 암살 : 청산리전투 참전. 공산주의자 최악에게 살해당함.



박용만(1881년 ~ 1928년)암살 : 하와이 대조선국민군단창설. 의열단원 이해명(이구연)에게 살해 당함. 



자유시참변(1921) : 이르쿠츠크파 공산계가 소련과 손잡고 상해파 공산계 및 민족주의계 독립군 1천명을 사살하거나 소련으로 납치해 버린 사건. 이사건으로 만주 무장투쟁 동력 영구상실됨. 홍범도도 이때 포로로 끌려갔다.



광우병 사태의 진실.

명강의


현대 i40 살룬의 사제 트립컴퓨터 UI가 양카스럽기도 하고 해서 직접 꾸며봤다.

내 사제 트립컴퓨터의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성의가 없다는 점... 디자인의 성의가 아니라 최소한 터치했을 때 롤오버되는 정도는 구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간단하게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은 오리지날 트립컴퓨터 UI




메탈 + 골드 컨셉


메탈 + 실버 컨셉


카본 화이버 + 실버 컨셉


카본 화이버 + 실버 컨셉



위는 심심해서 디자인해본 UI



트립컴퓨터 UI의 교체는 의외로 간단하다.

트립폴더 내에 트립컴퓨터 배경이미지(BMP) 파일이 있는데, 교체만 해주면 된다.

트립컴퓨터 기본 폰트컬러도 Trip_Set.txt 파일의 RGB값 수정으로 간단하게 바꿀 수 있다.

파란색 디스플레이보다 빨간색이 이뻐서 디스플레이를 바꾸고 폰트 색상도 밝은 빨간색으로 바꾸어 보았다.





네비게이션의 SD카드를 포맷할때 백업을 깜빡하여 설치된 트립컴퓨터가 날아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중고차 구매시 사제 네비게이션이 매립되어 있고 트립컴퓨터 제조사를 모를 때 사제네비게이션은 작동하지만, 트립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아 제조사와 장착점을 알기 위해 전차주와 연락을 시도했는데 연락이 닿질 않으면 더욱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트립컴퓨터 제조사를 알려면 뜯어낼 수밖에 없는데, 공임이 들어간다.

 

이때는 트립컴퓨터 제조사가 배포하는 트립프로그램을 하나씩 설치해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된다.

 

사제 트립컴퓨터 제조사는 다음과 같다.

 

 

트립컴퓨터 프로그램은 보통 SD카드의 Trip 폴더 안에 설치가 된다.(사실 설치라기 보다는 관련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는 것) 제조사에서 차종에 맞는 트립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거나, 통합다운로더를 이용하여 SD카드에 설치하되, 작동하지 않으면 폴더 내 파일들을 지우고 다른 제조사껄 설치하고 이런식으로 반복하다보면 맞는 프로그램이 나오게 된다.
※ 이게 귀찮으신 분들은 SD카드에 trip, trip1, trip2, trip3, trip4 와 같은 방식으로 모든 제조사별 트립컴퓨터 임시폴더를 만든 후 테스트해보고 안되면 trip폴더를 삭제하고 trip1 폴더를 trip으로 이름변경하여 다시 테스트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차와 집을 왔다리갔다리 할 필요가 없어진다.
(참고로 네비가 읽어들이는 폴더는 trip 폴더)
단 OTG가 지원되는 SD카드리더기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기름을 무지막지하게 퍼먹는 대형세단을 타다가 유류비에 허리가 휘는 바람에 i40 살룬 달구지가 너무 이뻐서 중고로 구매했는데, 실수로 SD카드를 포맷하는 바람에 설치되어 있던 트립프로그램을 날려먹었다. 전차주와 연락도 안되고 한참 애를 먹다가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했는데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포스팅을 해본다.
 
 

 

이승만이 징집카드의 국적에 일본으로 표기했다고 진보언론들이 물만난 고기마냥 물고 뜯고 맛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뜬금없이 안찬호 선생은 왜 나오냐고?

왜나면 안창호 선생도 출입국 카드 국적란에 일본으로 표기를 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출입국카드 국적란의 일본표기(안창호)



그럼 안창호 선생이 친일파인가?

안창호 선생이 출입국카드 국적란에 일본으로 표기했다고 해서 안창호의 국가정체성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승만의 징집카드 국적란(일본으로 표기함)



위 이미지는 요즘 이슈사 되고 있는 국적란에 일본으로 표기한 이승만의 징집카드다.

반면 당시 90%의 미주 한인들은 korea 또는 corea로 표기했다. 



팩트요약

  • 징집카드의 국적란에 이승만은 일본으로 표기함
  • 도산 안창호 선생도 출입국카드의 국적란에 일본으로 표기함




문제는 진보언론들이 전후맥락 무시하고 물고늘어지면서 이승만의 정체성을 깎아내리려는데에만 혈안이 되있다는건데 다른 팩트들과의 관계에서 보면 해석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하 진보언론들이 말하지 않은 팩트 정리해보자.



안창호는 출입국문서 국적란에 특이하게 한국이라고 적었다가 지우고 일본이라고 썼다. 

아마도 당시의 조선은 국제법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안창호 선생은 한국이라 적었다가 아차 싶어 지우고 일본이라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로 안창호는 친일파라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진보언론들의 이승만 징집카드 논리라면 도산 안창호 선생도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공개한 20여개의 이승만 행정문건 중 일본국적 표기 문건은 단 1건이다. 

나머지는 모두 korea라고 표기했다. 진보언론들은 나머지 자료에는 늘 그래왔듯이 입을 다물고 하나만 물고늘어진다. 그것도 법적 국적취득 여부와 무관하며 개인의 국가정체성을 투사할 이유가 없는 2400만명에게 일괄 배부한 형식적 행정서류 하나만 말이다.


이승만의 국적의식을 보다 잘 반영하는 서류는 아마 외국인등록증이 아닐까?




분명히 국적에 korea라고 적혀있다. 

진보언론이나 좌파진영에서 이승만 국적 표기가지고 물고늘어지는데 왜 제시 자료는 항상 징집카드 저거 하나뿐일까?

그 이유는 그거 하나밖에 없어서다.



이승만은 출입국서류를 비롯한 다른 모든 서류에는 korea로 표기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1918년 하와이에서는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봐야지 수십건의 문건에서 감춰오던 친일의 의지와 신념을 그때 딱 한번 형식적인 행정서류에 진솔하게 표현했다고 가정한다는 건 역사는 커녕 소설로도 안 쳐줄 망상이다. 


역사는 흔히 퍼즐에 비유된다. 


하나의 퍼즐조각(자료)은 다른 모든 퍼즐조각과 아구를 맞춰서 해석해야 한다는 건 역사학의 상식이다. 1918년 10월은 이승만이 미 대통령에게 한국 독립시켜달라고 수차례 편지보내던 그 무렵이다. 그러던 이승만이 의례적인 행정서류 하나 받더니 급진지해져서 자기 정체성을 고민한 끝에 부들부들 떨며 국적란에 일본이라고 쓰는 상황을 상상하며 그걸 역사적 진실이라고 내놓는 게 진보좌파 편향 역사학의 참담한 수준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상식적인 전제는 


  1. 2400만에게 의례 발송된 행정서류는 그 작성자의 신념을 단정할만한 핵심적인 정보를 주지 않는다.
  2. 징집카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는 독립운동의 행보나 미국의 외교정책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외교독립운동가 입장에서 거기에 의미를 두거나 특별히 신경써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3. 행정서류는 신념표현을 요구하지도, 환경변화나 실천에 영향을 주지도 않으며, 다만 법적 사실을 요구할 뿐이다. 이상을 고려할 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이승만은 하와이 행정당국에 괜히 책잡히기 '귀찮아서' 형식적인 서류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법적 사실에 따라 공란을 채웠다는 것이다.

그 뿐이다. 
이 시답잖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부류는 이승만을 현재 정치의 맥락에서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실성한 진보좌파들뿐이다. 







꾸밈비란 무엇인가

 

약 2005년경부터 등장한 정체불명의 한국 결혼식 문화다. 일반적으로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시가에서 며느리가 될 여성에게 봉채비와는 별도로 지급하는 명품 혹은 그에 준하는 현금을 꾸밈비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봉채라는 개념이 낯선 현대 여성들에게 봉채를 설명하기 위해 단순히 용어만을 변경하였다고 보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렇게되면 봉채비=꾸밈비가 된다.

 

그런데 요즘은 봉채비 외에 별도로 꾸밈비를 추가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사치욕이 만들어낸, 사라져야 할 잘못된 허례허식이라는 이라는 측과 자연스럽게 발생한 결혼문화라고 주장하는  측 사이에 논란이 있다. 허례허식이라 주장하는 측은 주로 결혼관련 업체 측인 반면, 자연스럽게 발생한 결혼문화라 주장하는 측은 대부분의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이다.

 

꾸밈비를 다룬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기사에서는 꾸밈비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한 결혼 전문 매체에서도 꾸밈비가 등장하기 시작한 2006년 기사에서 꾸밈비를 비판하였다. 하지만 여성들의 파워가 강력한 요즘 명분없는 꾸밈비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작아지고 있으며 각종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어 널리 알려지고 보편화되고 있다.

 

정체불명인 만큼 실제로 쓰이는 의미가 명확하지도 않고 돈의 성격 또한 명분이 불명확하다.

 

 

 

봉채비란 무엇인가

 

신부쪽에서 신랑쪽에 예단(비)를 보내고 신랑쪽에선 그에 대한 답례로 신부쪽에다 돈을 보낸다. 

다만 그때 보내는 돈의 성격은 사실 명분이 불명확하다. 왜냐면 신랑 신부집 양가간에 뭔가 주고 받은 것들은 모두 옛날 전통혼례의 관습을 따르기 마련인데, 꾸밈비 혹은 봉채비라고도 하는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돈은 딱히 옛 혼례에서 어떤 관습을 따른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가장 비슷한 관습을 찾아 본다면 양가가 서로 혼인을 하기로 결정이 되면 신랑쪽에서 신부쪽에다 혼서지를 보내면서 함 안에다가 신부의 옷(비단 옷감)과 함께 신부에게 줄 노리개며 분(화장품)과 같은 신부의 신변용품을 함께 담아서 보내게 되는데, 이 때 함안에 넣어서 보내는 신부의 옷감을 봉채라고 하였다.

 

그래서 신랑쪽에서 신부쪽에 주는 돈은 신부의 옷값인 바 봉채비라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나중에 함 들어갈 때 함 안에다 넣어서 줘야 하는데도 돈은 돈대로 따로 건네 주고 나중에 또 함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보내는 돈은 꼭 봉채비라고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요즘 미리 신랑집에 보내는 예단도 사실은 미리 보내는 것이 아니고 결혼식을 치루고 난 후에 신부가 신랑집으로 들어 오는 신행 때 신부의 혼수며, 이바지 등과 함께 갖고 오는 것이지 따로 예단을 보내는 격식도 없었다.

 

 

 

꾸밈비라는 용어는 언제 생겼나

 

 

 

 

서두에는 2005년 쯤에 갑자기 생겨난 용어라고 했지만, 2005년 이후부터 급속하게 퍼져나간 것이고 구글의 도움을 받아보자면 꾸밈비라는 용어는 2001년에 최초로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꾸밈비라는 용어가 2001년도에 최초로 생겼을까......

 

 

꾸밈비의 유래를 알아보면 2000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0년~2002년도에 발생했던 심각한 카드대란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꾸밈비의 원래 의미는?

 

2000년 극초반엔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해주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적이 있었다. 신용이 좋건 나쁘건 큰 채무만 없다면 무조건 발급이 되었던 시기이다. 그래서 너나 할거 없이 모두가 카드를 발급받아 펑펑 썼다. 특히 대학교 정문앞에서 카드를 무한 발급해주었는데 이때 여대생들은 신나게 카드를 발급받았고 나중에 카드대금을 막지 못해 신불자가 되어 유흥쪽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때쯤 우후죽순처럼 생긴게 키스방, 대딸방이었다. 실제 몸을 파는건 아니라고 생각한 여대생들이 이쪽으로 많이 흘러들어갔다. 손님이 6만원 주면 업주가 보통 4만원, 여자가 2만원 이렇게 가져갔는데 솔직히 한번 물빼주고 2만원 받기는 억울했던 것.

 

그리고 기존 비지니스클럽이나 다방레지 등은 줄어들고 대딸방, 키스방같은 센세이션한 업종(?)으로 막 생기다보니 업주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붙었다. 

건물 하나에 대딸방 3개씩 있던 적도 있고 그랬다.

 

그러다보니까 지들 업소녀들을 좀 더 이쁘게 꾸며서 손님을 한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고 단골로 만들어야했는데, 처음부터 창녀짓 하던 애들이 아니라 원래 대학 다니던 애들이라 이런 쪽으로는 쑥맥이었던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풋풋한 여대생이라고 봐도 되는데 나쁘게 말하면 창녀처럼 꾸미질 않았던 것이다. 자기들 딴에는 몸파는게 아니라 그냥 맥도날드 알바간다고 생각했으니까...

 

원래 유흥쪽에서 종사하던 여자들은 그냥 마이깡 땡겨서 지들이 알아서 꾸몄는데 이여자들이야 전부터 이쪽 업계에 있던 터라 꾸미지 않으면 단골손님 안오는거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주들이 생각한게 기본가격을 7만원으로 올리고 업소 나오는 여대생들한테 만원씩 더 주면서 "니들 좀 꾸미고 다녀라. 같은 업소 너무 많이 생겨서 경쟁이 치열하다" 즉, 손님한테 만원씩 더 받아서 꾸미라고 여대생들에게 주던 돈이 꾸밈비이자 시초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나름 업소 다니면서 빚도 좀 값고 일 그만두고 결혼할 나이가 되니까 여성시대나 레몬테라스같은 여초까페에 가입해서 예전 버릇 개 못주고 "결혼전에 좀 꾸미려면 꾸밈비 받아야죠 호호" 이렇게 된 것이다. 인터넷초창기에 카드대란 + 여초까페 신설 이때 갑자기 생겨난 용어가 꾸밈비다. 따라서 결혼할 때 꾸밈비를 요구하는 신부가 있다면 잠깐이라도 화류계 몸담고 있었던 여자이거나, 머리가 비어서 그저 남들 하는대로 따라하려고만 하는 줏대없고 허영심이 강한 소위 말하는 '김치녀'일 가능성이 농후하니 신랑측은 파혼을 고려해볼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20대 때 몸을 막 굴리다가 결혼할 때 과거 흔적을 완벽하게 없앤다음 호구남을 물어 결혼하는 여자들이 굉장히 많다. 과거세탁 뿐만 아니라 화류계에 몸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성기의 변화도 이전으로 완벽하게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요즘 성형외과다.

 

 

꾸밈비의 유래에는 또다른 이유도 있다.

꾸밈비는 그냥 봉채비에 포함되는건데, 돈 있는 남자집에서 자기랑 맞지 않는 집이랑 결혼할 때  남자쪽에서 여자 행색이 초라하니 이것저것 사주고 한게 퍼지고 퍼져서 꾸밈비가 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까 신랑측으로부터 꾸밈비를 받는걸 수치스러워야 해야 정상인 것이다.

 

꾸밈비라는게 남자쪽에서 주고 싶으면 주고 말면 마는건데 그걸 달라는 여자들이 많으니 그게 문제인 것이다.

남자한테 자기는 안 주냐고 하면서 받으면 자기돈 아까워서 지금까지 못 산 샤넬 루이비통 등등 이것저것 사고 친구들한테 자랑하는게 말이 되며, 이것이 과연 옳은 결혼문화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2천~5천만원으로 결혼하면서 남자한텐 수억짜리 집을 해오길 바라고 거기다 공동명의까지...

그것도 모자라 꾸밈비라는 명목으로 수백만원까지 뜯어먹으려 하니 참으로 기가찰 노릇이다.

 

 

 

 

 

 

 

나중에 진짜 '친일파 후손'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포스팅을 할 계획이지만, 그전에 진보진영에서 유독 보수진영에 친일프레임을 씌우고 친일 선동을 할 때 안중근의사만을 언급하는 이유에 대해 포스팅 해본다.







일제강점기 시절 수동적인 항일운동에서 탈피하여 일본 인사들을 향해 물리적 공격으로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중 대표적인 인물은 안중근의사와 윤봉길의사가 있다. 안중근의사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하얼빈 역에 잠입,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윤봉길의사는 도시락폭탄을 던져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쓰구 등을 죽이고, 총영사 무라이는 중상,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은 실명되었고,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은 다리 절단 중상을 당했으며, 주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를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독립운동의 경중을 가릴 수 없는 위대한 두 독립운동가들중 유독 안중근의사만 언급되곤 한다.

특히 진보진영에서는 친일관련 선동을 할 때 안중근의사의 손바닥도장을 많이 이용한다.


이를 보다못한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는 안중근의사의 손바닥 도장이 진보진영의 선동에 이용되는 것이 불편해서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여러차례 신싱당부하고 경고도 했지만, 언제 진보진영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가. 해마다 친일논란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안중근의사와 손바닥도장을 전단지나 인터넷 매체에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진보진영에서는 안중근의사만 찾는걸까?

유관순열사도 있고 윤봉길의사도 있고 청산리전투 김좌진장군도 있는데?

게다가 유관순 열사는 진보진영 전문인 감성팔이 선동에 제격일 것 같은데 말이다.

(진보진영이 유관순 열사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http://inthink.tistory.com/17 포스팅을 보면 알 수 있음)




이유는 간단하다.


선동하려는 대상이 "어? 이상한데? 왜그렇지?" 하는 의구심을 갖을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무슨말인고 하니 윤봉길의사를 선동에 이용할 경우 그 후손들이 반발할 것이고 이것이 이슈화되면 평소 진보매체의 선동으로 친일파=보수세력, 새누리당으로 알고 있었던 어린 학생들, 대중들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서다.




그럼 그 새로운 사실이란게 뭐지?





다름아닌 윤봉길의사의 후손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교조나 진보단체의 온갖 선동으로 새누리당, 보수세력은 친일파라고 배웠는데 어째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진보쪽에서 윤봉길의사를 선동에 이용하기가 껄끄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윤봉길의사의 후손 뿐만이 아니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관이었으며, 김동삼, 오동진 등과 3대 맹장으로 불리기도 하는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인 김좌진장군의 손녀가 한나라당 의원이다. (좌: 김좌진의 아들 김두한과 김을동의원. 우:김을동 전 의원)


좌파세력들은 김좌진, 김두한 - 김을동의원의 연결을 끊고자 갖은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선동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도올 김용옥은 김두한이 김좌진장군 아들이 아니라고 떠들어 댔는데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자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나중에 김을동 의원에게 자신이 허위주장을 했음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더 웃긴건 위연홍이라는 중국여자가 김좌진장군의 외손녀라고 주장을 하여 논란이 불거졌을 때에도 김을동의원이 유전자검사를 제안하자 중국으로 줄행랑을 치고 돌아오지 않았다. (위연홍이 국가보훈처에 근거를 제시했지만, 허위사실이 너무 많아 거부당함)







진보진영에서 추앙하는 김구선생의 아들인 김신은 박정희대통령의 5.16군사혁명에 동참했으며, 그 후손들 역시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놀라운 사실들을 대중들이 알게 되면 그동안 좌파진영에서 보고 배웠던 친일파에 대한 가치관이 흔들리고 왜 저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소위 말하는 보수세력이 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제로 인터넷에는 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지 궁금해서 질문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좌파성향의 네티즌들은 어떻게 대답을 했을까?






한나라당으로부터 돈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ㅋㅋㅋ


질문자는 왜 윤봉길의사의 후손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는데, 댓글들은 엉뚱한 소리들을 하고 있다.

참 빈곤하고 저렴한 답변이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당들의 계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긴 속이 많이 쓰리겠지...

윤봉길의사 후손이나 김구선생 후손들이 진보였다면...

정말 두고두고 사골국 우려먹듯 선동에 효과적으로 이용했을텐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굴욕적으로 나라를 빼앗긴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해방 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마음 속엔 반일정서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특히 스포츠에서의 한일전은 온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였고 선수들 역시 한일전에서만큼은 죽을 각오로 투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국민들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쪽바리들을 때려눕히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다보니 '친일파'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에서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는 굉장히 민감한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엉뚱하게 선동에 이용하는 세력이 있으니...


바로 좌파세력들이다.




사람들은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뿌리가 진짜 친일세력이었던건 알까?

지금 더불어민주당(구 민주당)에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악질 친일파의 후손들이 대거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건 현 새누리당(한나라당)은 친일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방 이후 친일지주세력의 당이었던 한민당이 자유당 탈당파와 손잡고 만든게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뿌리)이니 민주당을 지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뿌리가 친일이니 독립운동가들 때려잡던 일제헌병의 후손들이 민주당에서 국회의원질을 하고 있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만은 않다.





글을 마치며...


진보진영에 부탁하건데 당신들의 선동에 독립운동가분들을 이용하지 말길 바란다.





문재인 의원이 박근혜의 건국발언을 두고 대한민국의 건국은 3.1운동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쌩뚱맞은 발언을 하여 논란이다.

문재인 본인이 특전사 출신인데다가 부모가 6.25때 미군의 도움으로 무사히 피난길에 오르기도 했음을 감안하면 적어도 안보나 국가관 만큼은 보수적일거라 생각했는데 어떻게된게 하는 발언마다 좌파 급진적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오랜 숙원이었고 현재 김정은의 희망사항인 연방제통일(적화통일)을 지지하질 않나......

북한의 핵위협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줄 사드배치를 반대하질 않나......

철없이 부화뇌동하는 애들 틈바구니에 껴서 국가보안법 해체 프랭카드나 들고 있질 않나......

단식하는 국민을 위로하고 말리기는 커녕 옆에 앉아서 같이 단식을 하질 않나......



어쨌든 문재인 의원이 대한민국의 건국은 3.1운동으로 이루어졌다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다.


문재인 의원이 이런 발언을 하자 진보진영에선 너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뜬금없이 3.1운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건국되었다고 떠들어 대고 있는데 그런자들이 왜 3.1운동에 무관심하고 유관순 열사를 홀대했나?




진보성향의 학자들이 만들고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 사용되어지는 교과서에는 유관순열사에 대한 내용이 단 한줄도 없다.


이유가??


진보학자들은 유관순이 친일파들이 만들어놓은 가공의 인물이라는 미명하에 교과서에서 빼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세운나라, 북한은 친일파청산이 잘된 나라라는 논리의 대한민국의 초대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종북사관때문이다. 3.1절을 무시하고 3.1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유관순 열사를 홀대했던 자들이 이제와서는 대한민국 건국이 3.1절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제나 느끼지만 진보좌파의 이중잣대는 끝이 없는 것 같다.


 


3.1운동이란?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독립운동 또는 3·1 인민봉기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고종의 인산일인 1919년 3월 3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유관순열사


유관순 열사


1916년 미국인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초등부 3학년에 편입하고,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하였다. 3월 1일 3.1 운동에 참여하고 3월 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으로 내려와 후속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고,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었다. 일제의 교도소 내 가혹행위로 인해 1920년 9월 28일에 사망했다. 2013년 주일대사관에서 발견되어 국가기록원이 이관받아 11월 19일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유관순, 옥중에서 타살(打殺)"로 기재되어 있다.







요즘 진보언론들과 진보진영에서는 녹조라떼 운운하며 슬슬 4대강 선동에 또 시동을 걸고 있다.

또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우매한 네티즌들이 소셜, 뉴스댓글 등에서 왜곡된 선동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 대고 있다.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은 잘못된 점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막연한 증오심을 바탕으로한 비판은 대중들에게 잘못된 지식과 거짓을 전달하게 된다. 

 

전자는 합리적 비판이고 후자는 선동이다.

 

이명박의 4대강이 성공한다면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누구에게 손해가 돌아갈지를 따져본다면 왜 좌파단체와 진보언론들이 4대강을 깍아내리려 하는지 답은 나온다. 이미 이명박이 추진한 2가지 굵직한 정책인 청계전복원사업과 버스환승제가 큰 성공을 했기 때문에 4대강 하나라도 짓뭉개놔야 진보진영의 입지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대강이 성공하면 모든 국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이미 4대강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근래에 TV에서 수재민돕기 ARS문구를 본 적이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4대강 공사 후부터 매년 있어왔던 홍수로 인한 피해와 수재민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소방방재청의 자료를 보면 4대강 공사를 하기 이전에는 매년 수백억원 ~ 수천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하였지만, 4대강 공사 이후에는 피해액이 급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년 물난리를 겪을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4대강 공사는 이명박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해야만 했던 사업이다.

 

 

그럼 4대강이 성공할수록 손해인 사람들은 누구?

 

바로 현 야당쪽, 즉 진보진영에겐 정치적으로 손해일 수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명박이 버스환승제로 서민들 다리를 편하게 해주었고 청계천으로 서울 물난리 막고 훌륭한 쉼터를 제공해주었으며 4대강으로 홍수피해를 크게 줄였으니 국민들이 보수정당출신 대통령이 일 잘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진보정당에겐 큰 정치적 손해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내가 무슨 이명박의 4대강 홍보대사나 알밥?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겠는데, 난 이명박을 싫어한다.

이명박정부와 우리 집안의 사연때문에 나에게 있어 이명박은 천하의 개x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분들껜 죄송하다.

 

 

하지만 난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건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건간에 잘한 일은 잘했다, 못한 일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더 성숙해지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진 않지만, 요즘 진보언론의 4대강에 대한 선동적인 기사들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되어 본 포스팅을 작성하게 되었다.

 

 

 

 

 

 

어쨌건 야권에겐 4대강의 성공이 정치적으로 큰 손해다보니 4대강은 실패했다고 까고 진보언론도 합심하여 녹조라떼니 뭐니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면서 까는 것 아니겠나.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도 빈번하게 발생했던 녹조현상을 마치 4대강 공사를 한 이후부터 생겨난 것처럼 선동을 해야 국민들에게 4대강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심어줄테니 말이다.

 

녹조현상은 더위 뿐만 아니라 생활오수 등으로 인한 오염물질에 의해서도 생긴다.

그런데 진보진영이 참 웃긴게 서울시 산하기관인 하수처리장에서 2013 ~ 2015년까지 3년동안 한곳에서만 특이하게 104차례 오물(똥물)을 무단 방류한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토록 생태계와 자연을 끔찍하게 생각하던 사람들과 환경단체들이 말이다.

 

 

 

 

 

 

이들은 한강에 똥물을 무단방류하고 매년 1억원의 성과금을 받았다는데, 천하의 꿀직업이 아닐 수 없다.

 

검색을 통해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묻는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는걸 알고는 있었나?

 

아마도 몰랐을 것이고 모를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녹조 발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똥물을 100차례 넘게 방류한 이 사건은 종편에서만 한두번 다루어 졌고 진보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겨례와 경향, 오마이뉴스 등은 입을 꾸욱 다물었고 한줄의 기사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니 소리소문 없이... 은근슬쩍 구렁이 담넘어가듯 묻혀버릴 수밖에 없는 사건이 되었다.

 

 

왜? 

 

강력한 권력을 가진 박원순 서울시장이 관련된 사건이고 4대강에 흠집을 내서 다음 대선때 정권을 잡는데 유리하게 끌고 가야 하는데, 이러한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권가도에 흠이 생기고 녹조라떼 선동에 차질을 빚기 때문은 아닐까?

 

 

 

 

 

자...

 

잠시만 눈을 감고.....

그리고 마음을 비워보자.

 

보수니 진보니, 좌파니 우파니 다 떠나서 잠시만 생각에 잠겨보자.

 

만약 이 중차대한 사건이 새누리당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이명박 서울시장 임기때 발생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한번 상상해 보자.

진보언론들은 연일 4대강과 연결지어서 오세훈과 이명박이 시민들에게 똥물을 마시게 했다며 몇달동안 기사를 쏟아냈을테고 학생들은 진보단체의 선동에 이끌려나와 똥물마시기 싫다며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지 않았을까?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한강 하류로 똥물을 무단방류하여 한강물을 오염시키고도 녹조라떼 드립을 치는 저 서울시장님을 보자.

연구원들과 함께 수질을 조사하러 갔으면 당연히 수질연구에 쓰이는 전용 채집용기가 있을텐데도 녹조라떼라는 신조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테아크아웃 컵에 녹조를 담은 저 모습...

 

우리는 흔히 저런 행동을 우리는 가증스럽다고 말한다.

 

 

우리편이 관련된 사건이니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퇴보하게 만드는 '진영논리'다.

 

 

 

 

 

팩트요약

  • 녹조는 폭염으로 인한 자연현상이며 매년 발생하던 현상
  • 박원순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104차례 똥물을 무단방류하여 녹조발생에 일조함
  • 그리고 그 산하기관의 임원들은 매년 성과금으로 1억씩 받음
  • 4대강으로 인해 어느날부터인가 TV에서 수재민돕기 ARS 문구가 사라짐
  • 4대강으로 인한 홍수예방으로 매년 수천억원 낭비되던 것이 수십억원으로 급감함
 
 
 

 

 

감성이 이성을 앞서면 시야가 좁아진다.

 

얼마전 4대강에서 생겨난 큰빗이끼벌레가 세간의 이슈였다.

흉측스럽게 생긴 이 벌레는 국민들을 속여먹기 딱 좋은 대상이었기고 좌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좌파언론들과 단체들은 4대강때문에 강물이 더러워져 큰빗이끼벌레라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지막지한 벌레가 생겨났다고 연일 선동을 해댔고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들은 거기에 부화뇌동하였다.

 

 

 

 

두 초등학생이 수조에 큰빗이끼벌레와 송사리들을 함께 넣어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실험결과 송사리 절반이 죽었다고 한다. 언론들은 위 초등학생의 실험을 기사로 실었고 이 기사를 접한 국민들 상당수는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 공사로 인해 뜬금없이 생겨난 매우 위험하고 해로운 동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초등학생이 무슨 4대강 보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보나마나 2MB 싫어하는 좌파성향의 부모가 개입한 실험일 확률이 99%다.

 

 

위 실험을 볼 때 감성이 뇌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생태계 파괴하는 4대강', '불쌍한 송사리', '나쁜 이끼벌레'만을 이야기할 것이고 이성이 앞서는 사람들은 '실험의 오류'를 지적할 것이다. 송사리들이 죽은 원인은 50여마리의 송사리들이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용존산소를 덩치 큰 큰빗이끼벌레가 모두 소모하여 죽은 것임에도 광우병 괴담에 선동되었던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러한 저급한 기사나 방송에 현혹된다. 

 

위 실험논리에 의하면 큰빗이끼벌레를 제외하고 송사리 50마리와 민물새우 5마리를 넣어서 민물새우가 죽으면 송사리가 생태계를 위협하는 해로운 동물일 수밖에 없다. 산소발생장치가 없는 수조에서 물에 녹아 있는 산소가 고갈되면 물고기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중학생정도의 과학상식만 있어도 잘못된 실험이라는걸 알 것이다. 언론들도 비과학적인 실험이라는 것을 알지만, 일단은 선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아무런 검증이나 팩트체크도 없이 기사를 내보냈다. 더군다나 초등학생이 썩어가는 강을 걱정하는 마음에 했다는 실험이라고 하니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호소력은 몇배로 증폭된다. 광우병 난동때 주부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온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의 언론 수준이 이렇다.

 

 

 

큰빗이끼벌레를 오랜기간 연구해온 해외 전문가나 한국 생물학자의 말에 따르면 큰빗이끼벌레는 1941년부터 전국에서 발견되었고 평소에는 휴면상태로 있다가 생육조건(이상고온)이 조성되면 발아하여 군체로 성장한다고 한다. 흉측한 외모와 냄새를 가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큰빗이끼벌레가 생태계를 위협하는 동물도 아니고 이 동물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오염의 척도로 삼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게다가 큰빗이끼벌레는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한다고 하니, 오히려 강의 수질이 좋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보만 개방하면 모든게 해결되는줄 아는 멍청한 문재인정부는 4대강 보를 개방하라 지시하였고 물이 부족해지자 물고기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녹조는 더 심해졌고, 어용 환경단체들과 좌파들이 이명박때문에 썩어간다고 선동했던 강바닥이 모습을 드러내자 1급수에서만 산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민물조개가 대량으로 서식중임이 밝혀졌다. 때문에 4대강 이후 수질이 나빠졌다는 주장과 보를 개방하여 강물을 흐르게 하면 녹조가 사라진다는 주장은 거짓이라 할 수 있다.

 

 

 

 

 

1995년 12월 26일자 한겨례신문에 큰빗이끼벌레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1~3급수의 매우 깨끗한 물에서 서식하며, 수질이 오염된 물에서는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수질오염으로 인해 생겨난 동물이 아니라는 기사다. 이랬던 한겨례가 2016년에는 4대강 때문에 큰빗이끼벌레가 생겨났다고 하니 국민을 얼마나 개돼지로 봤으면 이런 기사를 내보낼 수가 있는지 참 이해안가는 언론사다.

 

암튼...

좌파들의 큰빗이끼벌레 선동이 여러 생물학자들과 과학적 근거에 의해 반박되자 방송이나 언론에는 더이상 큰빗이끼벌레 기사가 나오지 않았으며, 큰빗이끼벌레로 선동하던 얼치기 환경단체들도 입을 싹 닫았다.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고, 정정보도나 정정기사 한줄, 단체들의 사과도 없었다.

 

 

 

 


 

 

4대강은 병신사업이다. 근데 4대강 물좀 쓰게 해줘...

 

4대강은 우리나라 국익을 위한 사업이다.

대통령이 되면 국책사업 한가지씩 하게 되는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만금 공사를 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 알다시피 세종시 사업을 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매년 발생하는 고질적인 홍수피해와 썩어가는 강을 살리겠다고 4대강 사업을 했다.

 

 

 

 

4대강 사업은 우리나라의 물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의 4대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종합 개발 사업이다.

더불어 매년 발생하는 홍수를 예방하고 일부 썩어가는 강을 회생시키면서 국민들이 강을 찾게 하는 녹색 뉴딜정책이라 할 수 있다. 4계절이 뚜렷하고 장마철도 존재하는 우리나라는 물이 풍부한 편이지만, 농업, 공업용수 등 물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4대강 사업에는 이 어려운 물관리를 해결하여 농공업 용수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추가 지류사업을 마련했지만 야당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이 분은 누구보다 4대강사업을 등신같은 사업이라며 거세게 비판해오신 안희정 충남지사다.

그런데 2015년 전국에서 충남만 극심한 가뭄으로 제한 급수하는 등 비상사태 돌입하자 정부에 4대강 금강보 물 좀 빌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진다. 누구보다 4대강의 비판했는데 4대강의 물을 빌려야 할 판이니... 안희정 충남지사의 타들어갔던 속마음 이해가 된다.

 

4대강의 물을 끌어다 쓴 덕분에 농민들이 한시름 놓은 것에 대해 이명박 아니, 4대강에 대해 눈곱만큼의 고마움을 느낀다거나, 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해보기는 했을까....

 

만약 물자원 관리의 효율화를 위한 추가 지류사업을 야당이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안희정 충남지사는 4대강 물을 끌어다 쓰는 굴욕을 맛보지 않아도 됐었고 충남지역 농민들과 산업단지는 물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 그런데 그 어떤 언론에서도 야당이 반대하여 각종 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는 기사는 단 한개도 없더라.

 

 

 

 


 

 

 

4대강 유역 종합개발

 

4대강하면 이명박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1966년부터 계획, 시행되어온 국가차원의 종합 개발사업이다.

우리나라의 물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의 4대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사업인데 1966년부터 실시된 4대강에 대한 하천 유역 조사를 바탕으로 개발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제1차 국토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이것은 국토의 핵심부를 이루는 4대강유역에 대하여 치산과 다목적댐 건설, 하천개수와 관개시설 및 하구언 건설 등 수계의 일관된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로써 해마다 되풀이되는 한수해의 근원을 제거하고 용수의 경제적 공급으로 토지의 고도 이용과 식량의 증산 및 영농의 안정화를 기하며 공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생활 향상을 도모하는 한편, 날로 더해 가는 수질오염을 방지하여 보다 살기 좋은 낙토를 건설하는 데 개발의 목적을 두고 있다.

 

출처: 韓國國土開發史硏究(金儀遠, 大學圖書, 1982)四大江流域綜合開發計劃(1971)國土綜合開發計劃(1972)

 

 

 

따지고 보면 이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 역대 대통령들 모두 관심을 가졌으며, 역대 대통령 모두 4대강 정비사업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매년 수십~수백명이 홍수로 사망, 실종되고 효율적인 물관리가 안되어 발생하는 경제적인 피해를 그 어떤 나랏님이 외면할 수 있을까...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4대강의 심각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많은 돈을 들여 정비사업을 벌였지만, 4대강을 비난하는 사람들 치고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을 욕하고 4대강을 비난하면서도 4대강이 어디어디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답하는 사람 거의 못봤고 4대강이 왜 나쁘냐고 물어봐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 못봤다.

 

 

 

 

 

 

 

 

 

그러나 제대로 정비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4대강 정비사업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4대강 공사 전의 4대강 모습과 공사 후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공사 전의 4대강은 아주 멀리서 보면 그런대로 괜찮은듯 보이지만, 강어귀나 침식지, 하류에는 온갖 쓰레기가 넘쳐났고 극심한 냄새와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극도로 더러운 사진만 편파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참고로 4대강 공사 이전에는 오염되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면 4대강 공사 이후에는 오염된 곳을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차이는 명백하다. 그리고 오염때문에 떠났던 야생동물들이 다시 찾아오는 것만 보더라도 수질 또한 상당히 좋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명박이 싫고 좋고를 떠나서 이정도면 4대강 사업은 할만한 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

여기서 다시한번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고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만약 지금의 4대강이 참여정부시절, 당신이 좋아하는 노무현대통령의 작품이라면?

당신은 여전히 4대강을 비난했을까?

 

 

 

4대강 정비사업은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해오던 사업이었지만, 제대로 성과를 못내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손대서 저정도 결과를 도출했다면 솔직히 칭찬할 만한 사업이 아닌가?

 

 

혹자는 22조원을 복지에 썼어야 했다고 말한다.

일부 네티즌들은 22조원을 김밥 혹은 국방무기로 비교하여 22조원이면 이만큼의 김밥과 무기를 살 수 있다고 선동한다.

그 김밥이면 빈곤층 불쌍한 아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감성팔이는 덤이다.

 

22조원이면 정확히 1년간 보편적 무상복지를 할 수 있는 돈이다.

눈 딱감고 1년간 복지를 해주고 매년 수천억원의 홍수피해와 인명피해, 그리고 냄새나는 쓰레기강을 후대에게 물려줄건가?

 

만약 이명박이 4대강을 하지 않고 그 22조원으로 무상복지를 해서 지지율이 약간 올랐다고 치자.

 

만약 홍수가나서 4대강 주변이 초토화되면 진보진영이 가만있었을까?

이명박이 홍수대책을 세우지 않아서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온갖 개지랄을 떨었을거라는데 내 부랄 두쪽을 걸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 22조원으로 무상복지를 할게 아니라 4대강을 정비했어야 했구나..."라고 뒤늦은 후회를 할만큼 이성적이지도 않다.

 

 

 

물론 4대강 공사기간 중 하도급비리나, 로봇물고기같은 병크짓은 욕먹어 마땅하다. 그런 비리는 김대중 새만금때도 있었고 노무현 세종시때도 있었다. 

 

 

 

 

팩트요약

  • 4대강사업은 1966년부터 시작된 국토종합개발 사업의 일부임
  • 4대강 정비사업은 김대중대통령, 노무현대통령, 이명박대통령 세 대통령이 모두 추진했었음
  • 세 대통령중 이명박의 4대강 정비사업이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음 

 

 


 

 

흠이 있어서 싫은게 아니라 싫어서 흠을 만든다

 

그런데 왜 위처럼 더 좋게 만들고 홍수피해도 없애고 정작 4대강 지역 주민들은 좋아라 하는 이명박의 4대강 사업에는 거품을 물고 물어뜯는 사람들이 효과도 못 본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비용에 대해선 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일까? 

 

 

 

 

내생각엔...

 

그사람들은 그냥 이명박이 존나 꼴보기 싫은거다.

쥐새끼처럼 생겨서 싫고 3번째 진보대통령이 탄생될 수도 있었는데 이명박이가 끊어 먹어서 싫은거다.

노무현의 실패한 부동산정책이 이명박 당선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진보진영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명박의 굵직한 사업마다 결실을 맺고 있으니, 더더욱 꼴보기 싫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반대했던 한미FTA도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이득을 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미FTA를 전면 재협상 한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한미FTA때는 조용히 있다가 바톤을 넘겨받은 이명박대통령이 FTA한다니까 진보성향의 언론 및 단체, 네티즌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광우병이 공기중으로도 전염되며, 생리대를 차도, 라면을 먹어도, 화장품을 발라도 광우병이 전염된다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 처럼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지금 광우병걸린 사람이 있나?

다들 알다시피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한 이래 단 한명의 광우병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 소개한다.

 

그렇게 미국소는 광우병소라고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미국에서 미국소를 먹고 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2명이 있지만, 모두 해외에서 걸려 온 경우로 밝혀졌다.

 

믿겨지는가?

 

사실 광우병의 온산지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다.

왜냐면 영국에는 영국소를 먹고 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200명이 넘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광우병파동때 선두에 나서서 선동하던 나꼼수 멤버인 주진우기자와 김어준씨다.

맛있게 스테이크를 드시고 계신데, 저기가 어딘고 하니 바로 광우병의 본고장, 영국이다.

 

뭔가 뒤통수를 한대 후려맞은 듯 쌔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우리나라 진보가 항상 이런 식이다.

반미를 외치고 반정부 시위를 독려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자식새끼들은 호화스러운 미국 유학을 보내고 남의 귀한 자식들만 거리로 끌고나와 온갖 선동에 이용해먹고 있다. 

 

 

 

 

 

얼마전 뉴스에선 미국소 판매량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보도를 봤다.

한미FTA를 반대하고 광우뻥 선동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미국소고기 절대 안먹었을거라 믿는다. 아니 영원히 쳐먹지 않기를 진심 바란다.

 

이게 우리나라 진보좌파의 이중잣대다.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이라도 잘한 일은 잘했다고 인정하는게 옳지 않을까?

사람이 밉다고 진실을 왜곡, 날조해야만 하는지...

 

증오심에 기반한 비판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흠이 있어서 싫은게 아니라 싫어서 흠을 만드는 대한민국의 뿌리깊은 이념갈등...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념갈등의 깊은 골이 메워지겠지만, 요즘 진보좌파의 이중잣대에 환멸을 느꼈기에 주저리 주저리 두서 없는 글을 써봤다.

 

 

 

 

 

 

P.S

 

블로그 개설한지도 10일밖에 안되었는데 10만명씩이나 방문해서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어떤 분께서 페이스북에 4대강관련 포스팅을 공유해 주셨더라.

 

 

그분의 페이스북 댓글들을 읽다보니 나더러 명박빠라고 하신 분이 계시던데...

 

 

필자의 집안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이명박정부때 서훈에 잘못된 점이 있어 바로잡기 위해 보훈처도 여러번 다녀왔고 이명박대통령에게 편지도 여러번 보냈지만 모두 무시당했었다. 우연한 기회에 청와대 행정관과 만날 기회가 생겨서 준비한 관련 자료들을 이명박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래서 난 이명박대통령의 업적은 존중하지만, 국민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인간 이명박은 싫어하는 것이다. 그 댓글을 단 분이 이 글을 볼 가능성은 없겠지만, 혹여 본다면 나더러 명박빠라는 말을 하지 말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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